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의 투쟁이라 했고, 심리적 이기주의는 선행도 결국 쾌감이나 죄책감 회피로 읽는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모성과 희생을 냉정한 계산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입양과 무관한 이웃을 향한 헌신은 설명이 길어진다. 모든 행위를 이기심으로 환원하는 이론은 반증 불가능에 가까워져 과학이라기보다 신조에 가깝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선택 이전에 책임이 온다고 했다. 공감 회로는 보상 회로와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연구는 그 직관을 뒷받침한다. 역사에 전쟁과 착취가 가득하다고 해서 협력이 부차적이라는 결론은 성급하다. 언어와 도시, 의학은 협력 없이 불가능했다. 이기심 본성론자가 토론 끝에 진실을 위해 입장을 꺾는 순간, 그 행위를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자기 이익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솔직함이 있다. 인간은 이기적일 수 있지만, 이기심을 자각하고 넘어서려는 존재이기도 하다. 동물과의 차이를 한 마디로 줄이기는 어렵지만, 도덕적 자기비판의 루프는 인간사를 특징짓는 강한 후보다. 이기심을 부정하지 않되, 이기심만으로는 인간을 담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겸손한 윤리의 시작이다.
효과적 이타주의는 계산을 동원하지만, 그 계산이 목표를 넓힐 때 이기심의 지형이 바뀐다. 피터 싱어의 논지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얼마나 남을 위해 쓸 수 있는가. 그 질문이 죄책감만 낳으면 윤리는 실패한다. 그러나 질문이 연대의 상상력을 키우면 윤리는 살아난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이분법은 교과서를 위한 것이고, 삶은 스펙트럼이다. 중요한 건 자기기만을 줄이는 것이다. ‘나는 순수했다’는 신화와 ‘모두가 이기적이다’는 신화는 같은 동전이다. 둘 다 사람을 평면으로 만든다. 인간은 모순된 동물이며, 그 모순을 견디는 문명이 있다. 이기심을 부끄러워만 하지 말고, 이기심을 핑계로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도 말자. 윤리는 그 좁은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