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도시를 걷는 방법: 같은 곳에서 다른 것을 발견하기

·350 단어수·2 분
작성자
Engineer

도시의 골목길

같은 도시에 몇 년째 살고 있어도 여전히 처음 보는 골목이 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직장까지, 집에서 마트까지, 우리는 대부분 정해진 경로만 반복합니다. 지도 앱이 알려주는 최단 경로, 매일 타는 버스. 이 루트만 다니다 보면 같은 도시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방법론: 플라뇌르(Flâneur)처럼 걷기
#

19세기 파리에서 시작된 개념인 ‘플라뇌르’는 목적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사람입니다. 샤를 보들레르가 처음 쓴 이 단어는 지금도 도시 탐험의 한 방식으로 통용됩니다. 핵심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산책의 목표는 ‘동쪽으로 30분’처럼 방향만 정하거나, ‘처음 보는 간판이 있는 골목을 발견하면 들어가기’처럼 작은 규칙 하나만 갖고 나서는 것입니다.

낡은 골목 간판들

무엇을 보게 되는가
#

목적 없이 걷다 보면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건물의 층: 길을 걸을 때 대부분 1층 가게만 봅니다. 위를 올려다보면 2층, 3층에 전혀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작은 스튜디오, 오래된 사무실, 숨어 있는 카페들.

시간의 흔적: 새 건물 옆에 붙어 있는 낡은 건물, 벽에 남아 있는 오래된 페인트 글씨, 폐업한 가게의 유리창. 도시는 시간의 단면들이 겹쳐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 같은 골목에서도 시간대마다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전의 배달 라이더, 오후의 노인분들, 저녁의 직장인들. 같은 공간이 시간에 따라 다른 색을 갖습니다.

도구: 카메라 하나면 충분
#

걷는 동안 눈에 띄는 것을 사진으로 남겨두면 좋습니다. 거창한 카메라가 아니어도 됩니다. 스마트폰으로 충분합니다. 단, 사진을 많이 찍으려 하지 마세요. 그러면 걷는 내내 화면만 보게 됩니다. 정말 마음을 끄는 것만, 한 장씩.

골목에서 발견한 오래된 카페

서울에서 걷기 좋은 방식
#

서울은 골목 탐험에 특히 좋은 도시입니다. 큰 길 뒤에는 반드시 작은 골목이 있고, 그 골목마다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작 방법: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지도를 보지 않고 걷습니다. 낯선 골목이 나오면 들어가보고, 막히면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나중에 지도 앱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하면 내가 예상치 못한 곳에 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좋은 시간대: 이른 아침의 도시는 다른 얼굴을 합니다. 가게들이 문을 열기 전의 조용한 골목, 청소부가 쓸고 있는 거리, 첫 손님을 기다리는 카페. 일요일 오전 7~8시의 도시는 완전히 다른 공간입니다.

걷기의 부산물
#

규칙 없이 걸을 때 종종 머릿속에서 해결되지 않던 생각이 풀리는 경험을 합니다. 걷는 동작 자체가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 자극하는 양측성 자극(bilateral stimulation)이기 때문에 트라우마 치료에도 쓰이는 기법입니다.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 걷는 것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 해결에 가까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는 이미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 주말,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